고조선 때의 연나라와 한나라의 침략
이번 포스팅에서는 한국사 외세 침입에 대한 시리즈 첫번째로 <고조선 때의 연나라와 한나라의 침략>에 대해 다루겠습니다.
아래의 내용은 제가 공무원 수험 기간 직접 수시간에 걸쳐 파일로 정리한 것으로
공부하시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.
※ 무단 도용은 금합니다.
BC2333 |
군장국가 단군(제사장) 왕검(군장) 건국 |
청동기문화(거친무늬, 미송리식토기, 북방식고인돌, 비파형동검), 제정일치, 요령(요서+요동)지역 |
BC4~3C |
연맹국가 단군조선 |
철기수용, 王호 사용, 왕위부자세습(부왕, 준왕), 조선 후 준왕 자처, 관직명칭 ‘상·대부·박사’, 연나라 장군 진개의 침략으로 서쪽 땅 2,000리(요동+요서) 상실하여 수도를 요하에서 평양(대동강유역)으로 이동. |
BC194 |
준왕을 몰아내고 위만조선 성립 |
철기 본격·적극 수용, 성장과정에서 진번·임둔 등 주변지역 복속, 중계무역 이득 독점, 관직 명칭 ‘왕·태자·비왕·상·대신·경·장군’, 준왕은 남쪽으로 이주해 스스로 한왕(韓王) 칭함. |
BC128 |
한나라 요동 태수 창해군 설치 |
한나라 요동 태수는 예군 남려를 포섭하여 거대한 폭동 일으키게 하여 28만명 한나라에 복속시키고 그 지역에 창해군을 설치 |
BC109 |
우거왕이 요동을 쳐 한무제의 사신이었던 요동동부도위 섭하를 죽임 |
한무제가 우거왕에게 보내온 사신 섭하가 고조선의 비왕장을 패수에서 살해한 공으로 요동 동부도위로 승진하자 빡친 우거왕이 군사를 보내 요동을 쳐 섭하를 죽였다. |
BC108 |
왕검성 1차 전투에서 우거왕이 승리 |
왕검성 1차 전투에서 우거왕이 수군 다 무찌르고 육군도 패수에서 저지하자 당황한 한무제가 위산을 보내 협상 진행했고 우거왕이 항복하려고도 했으나 결국 결렬되고 전투모드로 돌입. |
장기전과 내분으로 고조선 멸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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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4군 설치, 8조법이 60여조로 강화 |
‘낙랑·임번·진둔·현도’라는 지역에 한 4군 설치, 8조법(지배충 재산 보호 목적, 현재 3조목(살인·상해·절도)만 전해짐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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AD313 |
고구려 미천왕 |
낙랑군 축출 |
AD314 |
대방군(진번군의 일부로 낙랑군 남쪽 황해도 지역에 있었던 군현) 축출 |